. . . 그리고 특별하게 무주에서 배우게 된 중요한 사실은 바로 사람과 식물과 시간이라는 요소에 관한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어떻게 보면 무주 프로젝트의 핵심을 이루는 큰 줄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과 식물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지, 건축가가 처음부터 다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식물은 무엇으로 건축을 완성시키는 것인가 ? 바로, 흐르는 시간이다. 건축가는 공간을 제안하지만 실질적으로 많은 책임을 지는 직업인이다. 바꿔 말하자면, 사람들의 삶은 변하고 식물은 자라난다. 변화하는 사람들의 삶과 식물의 삶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정지된 건축은 생명력 있는 건축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바로 건축을 지속 가능케 하는 힘이다. . . . 건축가들의 가장 본질적인 모순은 자기가 설계한 건물에 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불특정 다수의 삶과 관계있는 공공건축은 다중의 삶을 미리 확정하는 일이기도 해서 보편적이면서도 시간에 따르는 변화 또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지금 여기에서, 모든 것을 확정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 모든 것을 확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즉, 부분적으로는 불확정적인 요소를 많이 남겨두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겨나는 변화에 대응하는 일을 ‘지금’ 확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 . .그래서 건축가들의 어려움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건축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이지, 지나간 시간을 위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물관의 경우는 지나간 시점의 유물이나 과거의 삶을 다루지만, 이마저도 미래의 열린 논의를 위해 오늘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문제의식을 같이한다. 즉 박물관의 경우 또한 사실은 미래의 일을 다루는 것이다. 가장 큰 어려움에 대응하는 방법은 건축이 지닌 근원적 모순을 직시하고 그 한계를 미리 예측하며, 불확정적인 것까지 오늘 확정할 수 있는 지혜와 상상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 . . 건축이란 우리의 삶을 조직한다는 것을 대변해준다. 즉 건축에서는 외관의 형식을 정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건축에서는 사람들이 원하고 사회가 원하는 삶의 형식을 실현시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먼저이고, 그 결과가 형태나 모양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건축의 기능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면밀한 관찰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보살펴주는 배려에 대한 문제다. . . . 건축은 언제 어디서든 주변과 관계를 맺게 되어 있다. 땅과 하늘, 아주 작은 풀들과도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배경이 될 것인가 형상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 풍경 안에서 짙은 녹색 빛의 산은 커다란 배경이 되어주고, 집들은 그 앞의 형상이 된다. . . . 자연의 기본 요소인 물, 흙, 나무, 돌 등의 원소가 건축과 어떻게 맺어지는가는 건축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주의 땅과 건축을 생각할 때, 우리는 물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물이라는 것은 원래 생성할 때부터 몇 가지 중요한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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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평평하게 수평면을 유지하려 하고, 자신의 몸뚱아리는 투명하게 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각도에 따라서 물을 보려는 사람에게 자갈과 물고기를 보게 하고, 때로는 하늘을 반사해 구름과 새를 비추게 하는 약속을 한 것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자신만이 아니라 모래와 자갈도 실어 나르고, 그렇게 해서 평야도 만들고 땅을 기름지게 한다. 필연적으로 흙과 관계하는 수분을 흙 속에 들어가서 생명을 자라게 한다. 겨울철에는 얼어서 물밑의 기후를 고르게 한다. . . . 바로 이러한 물을 건축 내 외부 공간에서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는 물의 생태적 본성을 취할 수도 있고 교란시킬 수도 있다. 무주 프로젝트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몇 가지 특성 중 하나는 바로 건축이 자연과 어떻게 교감하는가에 대한 시선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 .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의 문제다. 삶의 요구들을 공간적으로 다루는 일들, 여기저기에 펼쳐진 건축물들은 마치 ‘산자락의 오솔길‘처럼 사람들이 다니면서 지속될 것이다. 지속하는 것들이 그 지역의 역사가 되고 집단기억으로 남아 궁극적으로는 공유되는 문화가 될 때 가치 있는 일들로 평가되는 것이다.
. . .다시 말해서 내가 이 길을 걷는다고 하는 것은 내가 바로 이 길의 역사에 편입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의미 깊은 일인 것이다. 만약 세대간 단절이 더 중요하다면 땅의 역사를 각별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 길을 의미 깊은 그림일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어떤 길목에서 할아버지가 보던 풍경을 똑같이 아버지가 바라보았고, 나 또한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대한 사건이자 역사다. 동일한 풍경을 동일한 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길은 풍경을 기록하고 보존한다. 길은 풍경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홈 파인 레코드판이 소리를 저장하듯 말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은 이렇게 오래된 길들을 그림일기(figurative journal)라고 부르는 것이다. . . . 사실 내가 왜 안성면을 보고 감동하는가는 한 달 내내 이야기해도 모자란데, 우리나라 땅이 가진 풍토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감응’이다. 감응.
감응이라고 하는 키워드. 무주의 모든 일은 감응인 것 같다. 이를 영어로 말하면 correspondence, 쌍방적인 것, 무엇을 느끼고 응하고 . . . , 감응을 한자로 표현하면 어질 인(仁)자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어질 인’자는 사람이 둘이다. 사실 ‘어질 인’자에는 ‘생성’의 의미가 있다. 은행나무 열매를 행인(杏仁)이라고 하는데, 열매를 인(仁)이라고 쓰는 것은 감응해서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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