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줄기/백두대간

11 봉황산(신의터재-윤지미산-봉황산-갈령 (07.05.20))

낙동 2007. 12. 17. 13:22

좋음과 싫은 감정은 우리의 육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군요.

그것들은 우리가 입고, 먹고, 자는 잠자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근거한답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갖는 이란 녀석은

그것의 좋음과 싫음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보람이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표현한답니다.

일(직업)이란 우리의 정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근거한다는군요.


물론 좋은 것과 싫은 것은 전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우리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겠으나, 보람이 있고 없는 직업이란 녀석은 그러면 좋겠지만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도 단지 필요에

의해 세상을 함께 지나긴 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의식주와 관련된 것들을 폄훼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 삶이라는 것이 그것을 빼놓고는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테니까요. 


죽암에서 잠시 쉬었는데 하늘이 총총합니다. 거기서 출발한 버스는 한 시간 조금 넘어 신의터재에 이릅

니다. 약간 쌀쌀함마저 느껴지는 들머리에서는 어두움이라서 약간 방향을 잃고 좌왕우왕하다가 곧

마루금과 함께 합니다.(02:40)

신의터재에서 바로 위 오른쪽에는 묘가 1기가 있는데 마룻금은 봉분 후사면의 왼쪽을 타고 돌아 오르거

나 북으로 난 길로 들었다가 대략 5m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무덤 뒤 샛길로 향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후미회원님들과 함께하기로 해서 뒤에서 진행하는데 속이 또 좋지 않군요.

이럴 줄 알고 일부러 죽암에서 화장실을 다녀왔었는데도 현장에서 출발할 때 생긴 이상한 버릇이에요.

산좋아님에게 앞에 꼭 붙어서 진행하시라고 말씀드리고 뒤에 쳐집니다.

 

지난번에 보았던 큰꽃으아리는 보이질 않습니다. 봄꽃들 대부분이 금방 꽃을 피웠다가 금방 사그라지

는 것이 좀 쓸쓸하게 생각되는데, 영원하지 못한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의 공통점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씨앗과 자식들로 이어가니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일지 모릅니다.


길섶의 들꽃들은 어두움속이라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길은 평탄하게 이어집니다. 후미산님들과 합류하여 조금 진행하는데 산님 한 분이 뒤에서 나타납니다.

저와 같은 이유로 뒤에 쳐졌었는데 휘적휘적 금방 저희들을 앞서갑니다.


후미산님이라야 다 아시는 산좋아님과 수수꽃다리님입니다. 평지와 내림길은 잘 가시는데 단지 오름길

에서 많은 걸음을 이어서 내딛지 못합니다. 그러나 놀매쉬매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걸어 목적지로

향합니다. 어두움 속에서 앞서 진행하신 산님들이 다리쉼을 합니다(04:15). 저희도 따라 쉬었다가 출발

합니다. 검은등뻐꾸기가 특유의 음정으로 노래를 부르는군요. 


출발해서 두어 시간 지나서 검정색의 하늘에 어스름한 빛의 작은 구멍이 생기더니 이내 하늘이 뚫렸습

니다. 총총한 별들로 기대했던 일출은 뿌연 개스로 인하여 오늘도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들을 수 없었던 이름모를 새들의 노래가 새날을 함께 합니다.


윤지미산으로의 오름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05:35). 그러나 내림 길의 비알은 어느 비알에 견

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된비알이군요. 반대쪽에서 올라왔을 산님들을 생각하면서 조심조심 내려갑

니다.


내림의 끝에는 임도인데 임도 앞쪽 계곡에는 인삼밭들이 펼쳐져 있습니다(06:13). 직사광선에 대비한

햇빛가리개는 지역별 장소별로 그 설치방향에 차이를 보이는데 어떻게 기준을 잡는지 궁금합니다.


작은 산마루를 넘어 고개로 내려가는데 조금 전의 임도연장에 이릅니다. 임도 건너편으로 오르지 않고

그냥 임도 따라 오른쪽으로 진행합니다. 여기서 언젠가 산을 나서서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갈 즈음 우

두머리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한 떼의 백로들을 본적이 있는데, 오늘은 일조점호를 마치고 생활전선

으로 향하는 한 무리의 백로들을 봅니다. 따로 똑 같이.

  

임도를 얼마 가지 않아 산으로 드는데 전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고속도로가

보입니다. 아직 준공되지 않은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공사현장이군요. 잠시 뒤 왼쪽으로도 청원으로 이

어진 고속도로 시공현장이 보입니다(06:40). 우리는 그 도로의 터널 위를 가로지릅니다. 그 주변에는 은

방울꽃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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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오늘 목표지점의 거의 절반지점인 화령에 이릅니다. 화령재라고 되어 있는데 역전앞과 같은

말이 아닌지 . . 화령이 옳을 것 같습니다.(06:52)


길 건너편 정자아래에는 산님들 대부분이 식사를 끝내고 출발하였고 갑장인 가을국화님, 꺽지님, 그리

고 닉을 모르는 또 한분과 동생들이 있습니다. 동생에게 국을 건네받고 산좋아님, 수수꽃다리님과 아침

식사를 듭니다. 수수꽃다리님이 싸온 샐러드류의 음식에 대해 누가 질문을 합니다.


OO님 : 이거 집에서 직접 하신건가요.

수수님 : 마데 인 이마트

OO님 : 체리는.

수수님 : 마데 인 어메리카

사실은 저도 산행 오기 전날은 마트에 들러 빵과 과일을 준비하는데 비슷한 사람이 많이 있는가 봅니

다. 마데인이마트와 함께 즐겁게 식사를 들고 다시 출발합니다. 조금 전에 꺽지님과 가을국화님은 먼저

출발했습니다.


남녀간에 상대방을 선택하는 것도 전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좋음과 싫음의 예를 따르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좋아 선택한 사람이던 일이던 각자의 마음이 우선이겠지요.  


마룻금은 화령에서 아스팔트 따라 서쪽으로 고개를 내려가 오른쪽으로 문장대로 향하는 49번 지방도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마을 입구 건너편 산자락으로 이어집니다.


여기도 길은 편안함 그대로입니다. 무덤가에서 잠시 기다려 수수꽃다리님이 앞서고 잠시 뒤에 산좋아님

을 앞세우고 출발합니다. 무덤가에서부터 꽃봉오리가 올라온 솜방망이, 은난초, 노루발풀을 만납니다.

은난초는 꽃이 피었으나 노루발풀은 망울진 상태로 꽃은 보이지 않습니다. 타원형의 잎이 4~6장 달리고

포보다 꽃차례가 높으면 은난초, 잎 밑 부분이 줄기를 감싸고 잎 끝이 뾰족하고 포가 꽃차례보다 높으면

은대난초라고 부른답니다.(07:45)


왼쪽으로 보이는 마을을 산좋아님이 묻습니다. GPS기기에 마을을 표시하지 않아 잘 모르고, 지도를 꺼

내기 싫어서 그냥 진행하는데 산좋아님이 지도를 찾아보시더니 화서면이라고 하는군요.     


우리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백두대간의 고개를 몇 개 넘었습니다. 이성계와 왜적

아지발도와 주모할머니의 전설이 서려있는 여원재, 그리고 화적들과 임란과 관련있는 육십령, 호남,

영남사람들이 수도권으로 진입 시 통과해야하는 괘방령, 추풍령, 그리고 상주의 화령입니다.  

 

이 중에서 여원재와 화령은 우리네 삶의 터전을 거스르는 행정경계를 갖고 있지요. 순리대로라면 백두

대간의 여원재와 화령을 경계로 오른쪽은 경상도요 왼쪽은 전라도, 충청도이어야 하는데요. 전라도

남원 땅 운봉과 아영면, 인월면, 산내면은 백두대간 여원재를 동쪽으로 넘어 경상도로 넘어갔으며, 경

상도 땅 상주 화서면, 화동면, 화남면, 모서면은 대간 화령의 서쪽 충북으로 넘어갔는데 이것은 치열한

땅뺏기의 결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지역으로 경북 봉화군의 우구치마을은 대간의 도래

기재를 북쪽으로 넘어 강원도로, 경북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와 부석면 남대리는 각각 대간의 고치령과

마구령을 북쪽으로 넘어 충북으로 넘어갔습니다.


낑낑대면서 오른 산불감시초소에서 아랫마을을 조망합니다. 그리고 한번 더 깔딱을 올라 봉황산에 이릅

니다(09:43). 봉황산에서는 강릉에서 거주하시는 산님들 몇 분이 우리가 진행하는 구간을 남진 땜빵하

시느라 우리와 교차합니다. 꺽지님은 고향 분들이라서 반가워하십니다. 여기 주변부터 둥글레들이 산행

내내 함께 합니다.


비재로의 내림 길은 내림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봉우리가 몇 개 더 있습니다. 도중에 민백미꽃을 만납

니다. 


수수님은 이렇게 대간을 가야하나 갈등이 많다고 합니다. 많은 산님들이 오랜 시간동안 기다리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움 때문이지요. 부끄러운 마음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에서 온다고 합니다. 일회적인 인간

관계에서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산좋아님은 대간을 위해서 일주일은 몸을 준비하고 관리를 하신다는군요. 두 분이 대간 졸업쯤에는

지금보다 워킹능력이 나아질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비재 건너편 사다리에는 꺽지님 혼자 기다리십니다(11:30). 가을국화님은 15분 기다리시다 25분전에

출발하셨답니다. 꺽지님은 꿀빵을 건네주시고 먼저 자리를 뜨십니다. 비재 내려서기 전에 본 건너편

산기슭의 비알이 급해서 걱정했는데, 실제 오름길은 윤지미산 내림길보다는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부터 갈령갈림길까지는 심심치 않게 바위들이 보이나 우회로가 있어 큰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못제에 이르기 전 비알에서 나머지 음식을 처분합니다. 오름 중에 허기를 느꼈는데 두 분도 공통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산에 들어 땀이 나기 전에 옷을 벗고, 배가고프기 전에 먹어두어야 한다지요.


못제는 암릉을 지나 평평한 고개의 왼쪽에 위치하는데 지형상 분지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고이고 가물면 마르는 모양입니다. 못제의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물이 고인 곳의 직경이 1m 정도인

데 그 안에는 무당개구리 한 마리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습니다.(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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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내림을 몇 번 하고 난 다음 기기에 표시해 온 갈령갈림점에 이르렀는데 커다란 화강암 바위덩어리

가 버티고 있습니다. 산좋아님갈림길이라면 표시가 있을 거라고 더 진행하자고 합니다. 그 바위덩어

리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전방에서 다시 큰 바위가 가로막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심하게 경사진 곳을

내려 오르면 갈령삼거리입니다. 여기는 도상에는 721봉으로 표시된 곳입니다.


도중에 송백산악회의 여성회원이 그 산악회에서는 선두로 우리를 지납니다. 그리고 이어서 남성회원

들이 차례로 지납니다. 비재에서 탈출자를 위해서 기다리는 송백의 스기사님과 얘기 중에 그들이 11시

쯤에 갈령을 출발한 것을 알았는데, 3시간여 만에 12km를 진행하여 산줄기를 평지 걷듯 하는 이들은 산

악마라톤하는 사람들 같습니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멀리로 대변되는 무슨 스포츠브랜드의 광고가

연상되는군요. 한 달에 두 번 정도 자기 자신을 초월하려는 또 다른 싸움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갈령삼거리에서 갈령까지는 바위봉우리 하나를 넘어 내려가야 갈령에 이릅니다.(15:00)


12시간 20분 23.9km


 엊그제 실버들이 시도한 히말라야 원정대가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내려왔습니다. 두 분 다 60대인데

평범한 산꾼들로서의 오름의 완성이 아무나 시도할 수 없는 두려움과의 맞섬이라서 감격스러웠습니다.

생명을 건 산오름이라 . .

축하 올립니다.

 

솜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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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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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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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발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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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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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백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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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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